hell or high water 로스트 인 더스트(2016) / 빈곤의 무게
서부극하면 총잡이, 카우보이, 보안관, 인디언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은행강도를 빼 놓을수 없지~ 극단으로 몰린 주인공들이 돈 때문에 은행을 털면서 벌어지는 일들도 단골 소재로 많이 쓰여왔다.
현대판 서부극의 명작 이랄만 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그런 기존의 클리셰와 문법을 그대로 차용해서 담담하게 보여준다.
두형제 태너와 토비는 큰 빚에 시달리던 중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 명의의 작은 농장마저 은행에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달리 방법이 없던 형제는 전과자 였던 형 태너의 계획대로 이른 아침 한적한 은행을 털기로 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시골 작은 은행을 몇군데 별탈없이 성공적으로 털면서 점점 대범한 행동을 하게 된다.
다혈질에 즉흥적인 태너(벤 포스터)와 달리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점차 일이 커지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결국 그 날이 오고야 마는데…
은행강도 사건을 조사하던 백전노장 보안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 은 치밀한 수법을 보고 형제를 바싹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배경으로 너무나 현실적인 총격전과 단지 살기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래서 더 처량해보이기도 하고 먹먹한 느낌이 든다.
보다보면 분위기나 등장인물등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스산하면서도 건조한 날씨와 맥주를 늘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는 더위등.. 무엇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주 등장하고 주인공 마저도 보안관은 은퇴를 앞둔 할배라는 점이 쌍둥이 처럼 닮았다. 물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범죄에 휘말려서 어쩔수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지만 이 영화에선 본인들이 은행강도가 되기로 결심하고 달려드는게 좀 다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무지막지한 킬러도 여기엔 등장하지 않는다.
킬러보다 무서운건 바로 삶을 무자비하게 좀먹고 인생마저 비루하게 만드는 빚과 가난이다. 은행에 저당잡힌 건 집과 농장만이 아니라 거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인생 전체인 거다. 아이러니 하게도 형제가 목표로 삼은 은행은 텍사스 미드랜드 은행인데, 이 은행이 바로 빚을 지게 만든 장본인, 즉 채권자 자신이다. 어찌보면 형제가 그들 나름대로 복수(?)아닌 복수를 해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자 감히 어찌 할 수 없는 적이었기에…. 그래서 푼돈이라도 뺏는것이 돈 이상의 가치와 나름의 희열, 짜릿한 그 무엇이 있는게 아니었을까.
늙고 병들은 노인처럼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나라… 그게 전부는 아닌데도 실제로 수 많은 미국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러니 위대한 미국을 줄기차게 밀고 나간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까지 된것이다.
아닐수도 있다. 영어 자막으로 봐서 사실 내용을 100% 이해했다고 할수 없으니… 어쨋거나 영어 원 제목- hell or high water- 은 사실 확 와 닿지가 않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 라는 제목은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썩 괜찮은 느낌이다.
최소한 영화를 보고나서 만든 제목이니까.
먼지속으로 사라지다…. 그렇게 형제는 먼지 속으로 사라져갔다….
# hell or high water 는 원래 대로 쓴다면 come hell or high water 라고 쓴다는데, 직역하면 지옥이나 높은물(홍수?) 이 덮쳐도… 란 말이고, 의역하면 무슨일이 있어도… 라고 해석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형제는 용감했다? 아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죄는 짓지 말아야지…. 사람 답게 살지 못한다 해도 살아 있으려면…. 죽는것만 못한 삶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