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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끝

[향기에 취해 길을 잃다]

안녕하세요~ 대리 부르셨죠? 좀 멀리 가시네요~? 
-네
네 그럼 바로 출발 하겠습니다.. 벨트 하셨죠?
-네
네… 출발합니다…. 
-…..

그렇게 그는 새 하얀 최신형 세단에 새까만 옷을 입은 얼굴은 많이 하얀… 느낌의 아가씨인지 젊은 아줌마 인지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 길고 까만 머리카락의 여자 손님을 뒤에 태우고

목적지인 강원도의 끝으로 출발했다.

/10분전

‘아, 이거… 너무 먼데… 강원도 라고??? 이 밤에??? 못 돌아오겠는데…. ‘

그는 찰라의 순간 잠시 고민했지만, 뭐에 홀린듯 콜 수락 버튼을 터치해 버렸다.

최근에 생각처럼 맘대로 제대로 뛰질 못한 탓도 있었고

거리가 거리인지라… 거의 20만원에 가까운 대리비가 너무나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까짓거 근처 모텔 같은데서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오면 되겠지… ‘


이래저래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외해도 그 정도면 남는 장사였다.

요즘 한방에 10만원 넘게 벌 수 있는 꿀알바가 몇 개나 있던가./


대충 네비로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차가 별로 없어 다행이었다.

‘한 120키로로 계속 달리면 2시간 반이면 도착하겠지…’

그는 평소처럼 추월차선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서로 아무말 없이 그렇게 약 한시간 쯤 달렸을까.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인지, 창문을 닫고 달렸는데도, 이상한 한기가 조금씩 느껴졌다.
이상하네.. 히터가 고장이 났나.. 거의 새차 같은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갑자기 뒤에서 

– 저 기사님, 죄송한데.. 이번 휴게소에 잠시 들러주세요.
아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략 15분 이면 도착 하겠네요
-네 
화장실 가시려나봐요
-…..
아 죄송합니다. 괜한 말을 했네요.
-괜찮아요
네 빨리 모시겠습니다.
-네

잠시 뒤 들른 꽤 큰 휴게소는 이상하게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 

그는 차에서 좀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며 보고 있었다. 
여자 손님이 검은색 작은 캐리어를 끌고 화장실 쪽으로 가는걸 

‘뭐가 들은거지?’

꺼림칙한 기분이 살짝 스쳤지만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옷이라도 갈아 입으려나.. 좀 불편했나…  검은색 정장…’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왔다.
하얀 옷… 마치 소복 같아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뭐지 저 옷은…? 내가 뭘 잘못 본건가… ?? ‘ 

최근에 몇 달을 계속 밤새며 이리저리 뛰어서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차로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애써 침착하게 미소 아닌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미간이 살짝 찌푸려 졌다.

그렇게 뭔지 모를 알수없는 찜찜한 기분으로 막 악셀을 밟았는데,
반짝거리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기름 좀 넣고 가야겠네요
-네
결제는 어떻게 할까요?
-여기 이걸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름을 만땅으로 채우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는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는 편 이었다.
그런데도 차 안의 분위기가 너무 차갑고 무거워 자기도 모르게 아무말이 튀어 나왔다.

저 고향집에 가시나 봐요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쓸데없는 소릴 했네요
-괜찮아요

다시. 침묵.

‘에라 모르겠다. 빨리 데려다 주고 따듯한 물로 씻고 잠이나 실컷 자자… ‘

그는 아까보다 더 악셀을 꽉 눌러 밟았다.
차는 거의 날아갈듯이 미끄러지듯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차 괜찮네~ ‘ 

역시 새로나온 차라서 그런지 쓸만하네 하고 감탄하며 평소처럼 자기만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렇게 또 한시간을 남짓 달렸을까..

이번엔 갑자기 그가 급해졌다. 

‘아까 잠 깨려고 마신 커피 탓인가… ? 젠장 괜히 먹었어… 에이…  ‘

저 죄송한데, 이번 휴게소에 잠깐 들러도 될까요?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네 그러세요
네 감사합니다. 빨리 들렀다가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후다닥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왔는데…
휴게소에 쥐새끼 하나 없다.

‘이상하네.. 아까 분명히 서넛 있었는데… 그새 다 출발했나 보지 뭐. ‘

이번에도 그는 대수롭지 않은듯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또 갑자기 말했다.

-기사님 피곤하시면 천천히 가셔도 돼요
네? 시간이 많이 늦어지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아 네 너무 빨리 달려서 불안하신거면.. 조금 천천히 가겠습니다…
-네

‘이상한데… ?’ 미세하게 그녀의 분위기가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차 안의 온기는 더 없어졌다.
속력은 100 키로 에서 왔다갔다 했는데
손은 아까보다 조금씩 더 떨려오고, 등 뒤로 오한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담배 탓인가… 술 때문인가…  ‘

며칠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서 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는 애꿎은 히터를 다시 만졌다. 
차 안은 여전히 쥐 죽은듯 고요하고 차는 시커먼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기분 탓 이겠지… ‘

그는 애써 느껴지는 소름을 부정하고 있었다. 부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 한시간 남짓 달렸을까.

차는 어느새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국도로 접어 들었다.
국도로 들어 서니 아예 앞이 보이질 않았다.

산 근처라서 였을까.
안개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희뿌연 뭔가가 차 밖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처음 와보는 길.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어쩌지… ?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에이…뭐야 이거… 젠장….  ‘

그리곤… 갑자기 네비가 먹통이 되었다.

‘아..뭐야… 요즘에도 산골에서 GPS 가 안 잡힌다고?? ‘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눈치 챈 것일까.

그녀가 끼어든다.

-저 기사님 제가 길 알아요
아..네 이상하게 네비가 말을 안 듣네요, 제가 이쪽은 처음이라… 
-네 제가 말하는대로만 가시면 돼요
네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저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해주세요
네네..

그렇게 또 30분 정도를 점점 좁아지는 산 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가는데…
아까 톨게이트 근처에 있던 가게들, 집들은 이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불빛도 안보이고…

‘아 이거 모텔같은거 없는 동네 아닌가… ? 괜히 왔나… 에이.. ‘

그렇게 온 길을 후회하는데

-기사님 거의 다 왔어요
아 네네 다행이네요
-저, 혹시 다른곳 가실데 없으시면 저희 집에 방이 많아요
네??? 아 괜찮습니다~
-제가 싫으세요?
아.? 네?? 그게 무슨… 전혀 그런거 아니구요.. 그냥 폐 끼치는거 같아서…
-괜찮아요 시간도 많이 늦었고 이 근처엔 쉬실곳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속으로 아 이게 뭐지 싶었지만
확실하게 거절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나긋 하면서도 상냥하고 익숙한듯 울리는 목소리와 알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렸기 때문에…. 

문득 룸 미러로 본 그녀의 모습에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스친다. 
첫사랑 이었던 그… 누군가의 모습을 닮은 듯 보였다. 왜 몰랐을까.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뒤를 돌아보기가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왠지 모를 싸한 분위기 탓에…

그렇게 또 얼마를 달렸는지 알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목적지인 강원도의 끝… 
어느 산골 깊은 곳에 있는 하얀 현대식 2층 집 앞에 차가 멈췄다.

‘집에 사람이 없나??’

집은 불이 다 꺼진 상태였다.
새까맣게 검은 하늘과 몇 없는 별, 그리고 실 같이 가늘고 얇디 얇은 달… 
그 아래에 덩그러니 놓인 새 하얀 집이라니.

‘부모님이나 가족이 있는줄 알았는데…아, 지금 새벽 4시가 다 되었네.. 자나보지 뭐… ‘

집은 근처 산과 짙게 우거진 나무들, 숲 속에 있는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하게 최신식 이어서 마치 어디서 떼다가 붙여 놓은듯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묘한 느낌 이었다.

어둡고 불빛이라고는 없어서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희미한 달빛에 비친 외관은 너무나 새 하얗고 특이한 구조로 겉만 봐서는 나름대로 멋진 집이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들었나 보네’

무슨 외국에 있는 별장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근데, 창이 없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향기가 서서히 느껴졌다. 꽃 향기 같기도 하고, 향 냄새 같기도 하고… 솔잎 향 같기도 한…  왠지 익숙하면서도 색다르고 매혹적인 그런…. 

무겁고 짙은 단단한 어둠을 깨며 그가 말을 건넸다.

집이 참 멋지네요
-네 
혹시… 혼자 사시는건 아니죠?
-….. 지금은… 혼자에요

그는 잘 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큰 집에 혼자 산다고???’

점점 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저 깊은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지만, 자기 의지와는 별개로 그의 발과 다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 집으로 몸 전체를 재촉하고 있었다.

알수 없는 한기는 집 가까이 갈수록 더 크게 느껴졌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다보니 이상한 향기는 이미 목구멍과 콧 속을 통과해 폐 속까지, 뼛 속까지 깊게 들어와 있었다.

그러자, 이내 그 향기는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향기에 취한 탓 이었을까…. 그는 갑자기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밤에 이런 산골에서 어딜 가겠어.. 단둘이니 뭐, 같이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흐흐흐’

그는 혼자만의 야릇한 상상을 하며 그녀의 하얀 살결과 이제까지의 차갑고 싸늘한 냉기가 아닌 진짜 사람의 평범한 따듯하고 은근한 그런 온기를 느끼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친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데 이 여자 대체 무슨 생각일까… 생판 모르는 남자를 이 한밤중에 집에 들인다니… 다른 사람도 없는 이 큰집에…. ?’ 

잠깐 설마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따라서 육중한 하얀 철제 대문을 지나 커다란 둥근 돌들이 깊게 박힌 길을 따라서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깜깜한 밤 깊은 곳을 지나 집안에 들어서니 그녀가 능숙하게 불을 켰다.

분명히 술을 마신게 아니었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온 게 분명했는데… 

갑자기 눈앞이 새 하얗게 변하면서 순간 어지럼증에 그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입은 굳게 닫혀 버렸다.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강하게 풍기는 알 수 없는 더 짙어진 그 향기와 위 아래로 점점 더 크게 흔들리는 바닥과 천장에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마치 아주 독한 술에 취한듯이..  약에 취한듯이.
그간의 피로가 쌓인 탓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작용한 것일까.
그는 도무지 정체를 알수 없는 깊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자신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정말로 그녀가 누구 인지는 꿈에도 모른채.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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